역사기록

동명유래-체부동

  • 서울 종로구 체부동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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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
    운영시간: 09:00 ~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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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용 무료

상세정보

(1) 동(洞) 유래 및 변천


체부동이란 동명은 1914년 동명 제정 시 갑오개혁(1894년) 이후 이곳에 있던 체부동에서 유래한다.
조선 태조5년(1396)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나눌 때 지금의 체부동은 북부 순화방(順化坊)에 속한 지역이었다. 영조27년(1751) 9월에 만든 도성의 각 동계(洞契)를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3군문에 분속(分屬)하여 유사시 동민들을 출동, 방어하게 하고자 만든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북부 순화방 사재감계였다.
고종4년(1867)에 간행된 『육전조례』에는 북부 순화방 사재감하패계(下牌契)였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한성부 5부를 5서(署)로 고치고 많은 동(洞), 계(契)를 신설함에 따라 북서(北署) 순화방 사재감하패계 구곡동(九曲洞), 체부동(體府洞), 누각동(樓閣洞) 일원 이었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거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면서 경기도 관할로 격하되었고 이듬해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개편된 경성부 북부 순화방 지역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로 경성부 관내 186개의 동(洞), 정(町), 정목(丁目)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정할 때 북부 순화방 사재감하패계의 구곡동, 체부동, 누각동 일부를 병합하여 체부동이라고 하였다. 같은 해 9월 29일 출장소 제도가 실시되면서 북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이듬해 6월 1일 출장소 제도가 폐지되어 경성부 체부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의 동명과 관할구역이 대폭 개편될 때 경성부 체부정(體府町)으로 바뀌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區) 제도가 신설되면서 종로구역소 체부정(體府町)이 되었다.
광복 후인 1946년 10월 1일 서울시헌장과 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해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로 고칠 때 체부동이 되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거 행정동제가 실시되면서 체부동은 필운동과 합쳐 매동(梅洞)사무소 관할이 되었다.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거 체부동사무소가 신설되면서 필운동, 내자동, 체부동을 관할구역으로 하였다. 1975년 10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981호에 의거 체부동사무소는 사직동사무소에 합쳐져 현재에 이른다.


(2) 동네 지명 유래


 체부(體府)는 체찰사가 업무를 보는 체찰사부(體察使府)를 줄여서 부르는 말인데 이 지역에 체찰사부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체찰사는 조선 초부터 있었으며 정1품은 도체찰사, 종1품은 체찰사라는 직책을 주고 임금이 지시한 특별한 사건이나 임무를 수행하는 임시적인 직책이므로 그때그때 필요한 인원을 배치하여 지시 사항을 수행하였다.
 구곡동은 골목이 아홉 굽이나 꾸불꾸불 한 곳에 있던 마을이므로 구곡골 또는 한자로 구곡동이라 하였다.
 체부동에는 예전부터 보물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옛날 이 체부동에는 보물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나 후손이 없는 공주가 살았는데 공주는 죽기 전에 소중하게 간직해 오던 보물들을 석함(石函)에 넣어 몰래 뜰 안에 깊이 묻었다. 그 후로 공주의 집은 여러번 주인이 바뀌었는데 새롭게 주인이 된 사람들은 그 보물함을 찾기 위해 집안 곳곳을 파 보았지만 찾지 못하였다. 그러다 이 집은 분할되어 여러 사람이 집을 짓고 살면서 보물찾기의 꿈은 사라졌다.
 영조 때 강직하기로 유명한 서리(薔吏) 김수팽의 어머니가 어느 비 오는 날 마루에 앉아 바느질을 하는데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落水)소리가 이상하여 땅을 파 보니 금은보화가 가득한 석함(石函)이 있었다. 놀란 어머니는 석함을 그대로 닫아버린 후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어머니는 죽기 직전에야 이 일을 이야기하면서 "안일하게 얻은 물품에 마음을 매이게 되면 공부에 힘쓰지 않게 되고 부유하게 자라면 커서 재물의 소중함을 모르게 되므로 당시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이사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자식들도 그 집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일설에는 김수팽의 손자 김학성 이야기라고도 한다)
 체부동은 북쪽은 통인동·누하동과, 동쪽은 통의동, 남쪽은 내자동, 서쪽은 필운동과 접해 있다.


출처 : 『종로의 역사˙문화 유산』, 종로문화원(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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