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록

동명유래-적선동

  • 서울 종로구 적선동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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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1) 동(洞) 유래 및 변천


 적선동의 동명은 1914년 동명 제정 시 종전부터 이 지역이 서부 적선방(積善坊)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조선 태조5년(1396)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나눌 때 지금의 적선동은 서부 인달방과 적선방(積善坊)에 속한 지역이었다. 영조27년(1751) 9월에 만든 도성의 각 동계(洞契)를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3군문에 분속(分屬)하여 유사시 동민들을 출동, 방어하게 하고자 만든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서부 인달방(仁達坊) 내수사계(內需司契)와 적선방 사온동계(司福洞契), 십자각계(十字閣契) 지역이었다.
 고종4년(1867)에 간행된 『육전조례』에도 영조 때와 같았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한성부 5부를 5서(署)로 고치고 많은 동(洞), 계(契)를 신설함에 따라 서서(西署) 인달방 내수사계 종교(宗橋), 장흥고(長興庫)계 장흥고동과 적선방 십자각계·어교(魚橋), 사온동계 사온동, 월궁동계(月宮洞契) 월궁동이 지금의 적선동을 이루고 있었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거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면서 경기도의 관할로 격하되었고 이듬해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개편된 경성부 서부 인달방, 적선방으로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로 경성부 관내 186개의 동(洞), 정(町), 정목(丁目)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정할 때 서부 어교(魚橋), 월궁동, 십자교(十字橋), 사온동, 장흥고동, 종교(宗橋) 각 일부를 합쳐서 적선동이라고 하였다. 같은 해 9월 29일 출장소 제도가 실시되면서 서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이듬해 6월 1일 출장소 제도가 폐지되어 경성부적선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의 동명과 관할구역이 대폭 개편될 때 경성부 적선정(積善町)으로 바뀌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區) 제도가 신설되면서 종로구역소 적선정이 되었다.
 광복 후인 1946년 10월 1일 서울시현장과 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해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로 고칠 때 적선동이 되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거 행정동제가 실시되면서 적선동은 통의동과 함께 백송동사무소 관할이 되었다.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거 적선동은 통의동, 창성동, 효자동과 함께 신설된 효자동사무소의 관할이 되었다가 1980년 7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1413호에 의거 사직동사무소 관할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2) 동네 지명 유래


 적선동은 경복궁에 이웃하고 있고 또 의정부를 위시한 중요 관청과도 인접하여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는 옛 글귀의 뜻을 취하여 이곳은 적선, 그 남쪽 지금의 세종로 네거리 남측 일대는 여경이라 하였다.
 적선동은 여러 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졌으며 경복궁과 가깝기 때문에 관아명칭에 따른 동명이 많았다. 월궁동(月宮洞)은 월성위궁골 이라고도 하였는데 영조의 둘째부마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蓋)이 살던 집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붕어다릿골은 붕어다리가 있다하여 붙여진 명칭인데 한자로는 어교(魚橋)라 하였다. 적선동 77번지 지금의 정부서울청사 부근 효자동쪽 입구에 있었는데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북어교(北御橋)로 되어 있다. 북어교에서 붕어교로, 다시 어교(魚橋)로 변하였다.
 십자교(十字橋)는 서십자각(西十字閣) 서쪽에 형성된 마을로 서십자각 다리가 있었기 때문에 십자교라 하였고, 내자동 71번지와 적선동 사이에는 종침교(琮架橋)가 걸쳐 있었으므로 부근의 마을은 종교동(宗橋洞) 혹은 종침다릿골로 불려졌다.
 내자동과 적선동 경계 부근에는 장흥고(長興庫)가 있었다. 설치 당시에는 남부 호현방에 있었는데 후에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장흥고가 있는 마을이라 해서 장흥고동·장흥동·장흥곳골로 불렸다. 한편 장홍고동에 대해서 『한경지략』에 장흥동에는 옛날에 장흥고가 이곳에 있었고 읍취헌(抱緊軒) 박은(朴闇)의 옛 집터가 있었고 또 일송(一松) 심희수(沈喜壽)의 집이 있었는데 그가 손수 심은 소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일찍이 좌의정 김광국(金光園)의 집은 새로 지은 것으로 너무 사치스럽다 하여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황폐하여 말썽이 되었던 옛집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사온동(司溫洞) 혹은 사온섯골은 지금의 적선동 170번지 부근으로 궁중에서 필요한 술과 감주를 공급하는 사온서(司關署)가 있었기 때문에 그 부근의 적선동·세종로·도렴동에 걸쳐있는 마을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적선동은 북으로 통의동, 동쪽은 세종대로, 남쪽은 도렴동, 서 쪽은 내수동과 연접하고 있다.

출처 : 『종로의 역사˙문화 유산』, 종로문화원(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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