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록

동명유래-소격동

  • 서울 종로구 소격동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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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
    운영시간: 09:00 ~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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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1) 동(洞) 유래 및 변천


 소격동의 동명은 1914년 동명 제정 시 삼청전(三淸殿)의 삼청성진(三淸星辰)에게 제사 지내는 일을 맡아서 하는 관청인 소격서(昭格署)가 있었다하여 유래되었다.
 조선 태조5년(1396)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나눌 때 지금의 소격동은 북부 관광방(觀光坊)과 진장방 지역이었다. 영조27년(1751) 9월에 만든 도성의 각 동계(洞契)를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3군문에 분속(分屬)하여 유사시 동민들을 출동, 방어하게 하고자 만든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북부 관광방 관광방계와 진장방의 진장방계 일부 지역으로 되어 있다.
 고종4년(1867)에 간행된 『육전조례』에는 북부 관광방 관광방계와 진장방 삼청동계로 되어 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한성부 5부를 5서(署)로 고치고 많은 동(洞), 계(契)를 신설함에 따라 북서 관광방 대안동계(大安洞契) 대안동(大安洞) · 화개동 · 소격동과 진장방 삼청동계 화개동이 지금의 소격동 지역이었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거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면서 경기도 관할로 격하되었고 이듬해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성부의 행정구역이 개편됨에 따라 북부 관광방 대안동계 대안동, 화개동 소격동과 진장방 삼청동계 화개동 지역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로 경성부 관내 186개의 동(洞), 정(町), 정목(丁目)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정할 때 북부 소격동과 화개동, 대안동 각 일부를 합쳐 소격동이라 하였다. 이해 9월 29일 출장소 제도가 실시되면서 북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이듬해 6월 1일 출장소 제도가 폐지되어 경성부 소격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의 동명과 관할구역이 대폭 개편될 때 경성부 소격정(昭格町)으로 바뀌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區) 제도가 신설되면서 종로구역소 소격정이 되었다.
 광복 후인 1946년 10월 1일 서울시헌장과 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해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로 고칠 때 소격동이 되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거 행정동제가 실시되면서 소격동은 안국동, 화동과 함께 신설된 별궁동사무소의 관할이 되었다.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613호에 의거 소격동은 안국동, 사간동, 송현동, 화동과 함께 신설된 안국동사무소의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10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981호에 의거 삼청동사무소에 통합되어 현재에 이른다.


(2) 동네 지명 유래


 소격동을 이룬 옛 부락으로 대안동(大安洞)은 큰 안동(安洞)이라고 하며 송현동 · 안국동 · 소격동에 걸쳐 있던 동네이다. 화개동(花開洞)은 장원서의 화초 재배지가 있으므로 붙여진 명칭으로 화동(花洞)이라고도 하며 소격동과 화동이 인접한 곳, 대안동의 북쪽에 위치하였다. 소격서다리는 소격서 앞에 있던 다리로 한자로는 소격교(昭格橋)라고 하였다.
 소격동은 동으로 화동과 안국동, 남쪽은 송현동과 사간동, 서쪽은 삼청로를 경계로 하여 경복궁과 마주 보며 북쪽은 팔판동으로 싸여있다.

출처 : 『종로의 역사˙문화 유산』, 종로문화원(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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