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유래-서린동
- 서울 종로구 서린동 99
-
시간
운영시간: 09:00 ~ 18:00공휴일 휴무
- 비용 무료
상세정보
(1) 동(洞) 유래 및 변천
서린동은 1914년 동명 제정 시 중부(中部) 8방(坊)의 하나인 서린방(瑞麟坊)의 방명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조선 태조5년(1396)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나눌 때 지금의 서린동은 중부 서린방에 속한 지역이었다. 영조27년(1751) 9월에 만든 도성의 각 동계(洞契)를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3군문에 분속(分屬)하여 유사시 동민들을 출동, 방어하게 하고자 만든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중부 서린방 포도청계(捕盜廳契), 일영대계(日影臺契), 고색정계(古索井契), 사기전계(沙器廛契), 박정계(朴井契), 전옥내계(典獄內契), 전옥후동계(典獄後洞契)와 징청방(澄淸坊) 두석동계(豆錫洞契) 지역에 해당되었다.
고종4년(1867)에 간행된 『육전조례』에는 중부 서린방 일영대계, 고색정계, 사기전계, 박정계, 전옥내계, 전옥후동계 지역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1895년 윤5월 칙령 제98호로 한성부 5부를 5서(署)로 고치고 많은 동(洞), 계(契)를 신설함에 따라 중서(中署) 서린방 일영대계의 신작로(新作路)·송교(松橋)·혜천(惠泉)·피마동·낭후(廊後), 모교계(毛橋契)의 허병(許屛), 고색정계의 허병·추동(椎洞), 황토현계(黃土峴契)의 피마동, 합동계(蛤洞契)의 모교(毛橋), 사기전계의 합동(蛤洞)·사기전동(沙器廛洞), 부정동계(富井洞契)의 부정동(富井洞), 전옥계(典獄契)의 사기전동·전옥후동(典獄後洞)·주전동(紬廛洞)·전옥전동(典獄前洞), 백목전계(白木廛契)의 백목전후동(白木廛後洞), 징청방 혜정교계(惠政橋契)의 두석동지역이었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거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뀜과 동시에 경기도 관할로 격하되었으며 이듬해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개편된 경성부 중부에 소속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로 경성부 관내 186개의 동(洞), 정(町), 정목(丁目)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정할 때 중부 모교, 전옥동, 추동(椎洞)과 사기전동, 피마동, 혜천, 백목전동, 부정동, 송교(松橋), 허병의 각 일부를 합쳐 서린동으로 하였다.
같은 해 9월 29일 출장소 제도가 실시되면서 북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이듬해 6월 1일 출장소 제도가 폐지되어 경성부 서린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의 동명과 관할구역이 대폭 개편될 때 경성부 서린정(瑞麟町)으로 바뀌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區) 제도가 신설되면서 종로구역소 서린정이 되었다.
1946년 10월 1일 서울시헌장과 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해 일본식동명을 우리말로 고칠 때 서린동으로 되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거 행정동제가 실시되면서 서린동은 청진동, 종로1가와 함께 광교(廣橋)동사무소 관할이 되었다.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거 청진동사무소 관할이 되었다가 1975년 10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981호에 의거 종로1가동사무소 관할이 되었으며 1977년 9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1181호에 의거 종로1-2가 동사무소관할이 되었다. 1998년 12월 1일 종로구조례 제383호에 의거 종로1-4가동사무소 관할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2) 동네 지명 유래
서린동을 형성하던 옛 지명 가운데 낭후(廊後)·사기전동(砂器廛洞)·주전동(紬廛洞)·백목전동·합동(始洞) 등 시전(市廛)과 직접 관련을 가진 것이 많다. 도성안의 시전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커서 행세를 하였다는 육의전(六矣廛) 가운데 면포전(綿布廛)·목전(木廛)·지전(紙廛)·포전(布廛)·내외어물전(內外魚物廛)이 서린방 내에 있었던 것도 상업이 일찍부터 발달했음을 알게 해준다.
서린동에는 예전부터 여러 개의 마을이 있었는데 행랑뒷골이라는 낭후동(廊後洞)이 있었으며 주석전이 있어서 이름이 붙은 주석전골 ·두석동이 있었고 마을 모양이 방망이와 같다고 하여 방망잇골이라는 추동(椎洞)이 있었다. 사기전이 있어 사기전골·사기전동 또는 사기동이라 하였고, 서린동과 남대문로1가에 걸쳐 백목전(白木廛)이 있었던 백목전동(白木廛洞)이 있었다.
전옥(典獄)이 있으므로 해서 전옥동(典獄洞)·전옥골, 그 뒤쪽은 전옥 훗골·전옥후동(典獄後洞)이라고 하였다. 황토(黃土)마루를 깎아내려 세종로와 연결되는 큰 길이 생기자 그 인근에 마을이 생겨났다. 이 마을은 새로 만든 길가에 생겼다 하여 신작로동(新作路洞)이라 하였다.
현재의 광화문 우체국 서쪽에는 세종 때 해의 그림자를 보아 시각을아는 앙부일구(仰釜日晷)를 두었으므로 그 부근의 마을인 신작로동(新作路洞), 송교(松橋), 혜천(惠泉), 피마동(避馬洞), 낭후동(廊後洞)을 합하여 앙부일구의 뜻을 따 일영대계(日影臺契)라 하였다.
서린동과 종로1가에 걸쳐 있던 마을은 장자우물이 있으므로 장자우물골 또는 부정동(富井洞)이라 하였으며 종로1가쪽의 서린동은 조개전이 있었으므로 합동 혹은 조개전골이라 하였다. 이 조개전골 뒤에는 담장이 이어져 있었으므로 병풍을 친 것과 같다 해서 허병(許屛)이라는 마을이 있었고, 혜정교 근처 우물 주변의 마을은 혜천동(惠泉洞) ·혜전골·혜전교우물골이라 하였다.
서린동 146번지 길가에 박고사우물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고사를 지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근처 사람들이 해마다 고사를 지낼 때면 온 마을이 사람들로 붐볐다고 한다. 박우물이라고도 하던 이 우물 아래쪽 서린동 96번지는 안고사우물 또는 줄여서 안우물이라 불렀는데 박우물과 달리 집 안에 있었으며 박우물처럼 고사를 지내면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서린동은 북으로 종로를 사이에 두고 종로1가와, 동쪽은 우정국로를 사이로 하여 관철동과, 남쪽은 청계천로를 경계로 중구 다동·무교동과, 서쪽은 세종로와 접해있다.
출처 : 『종로의 역사˙문화 유산』, 종로문화원(2016)
위치안내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1유형: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