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유래-사간동
- 서울 종로구 사간동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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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운영시간: 09:00 ~ 18:00공휴일 휴무
- 비용 무료
상세정보
(1) 동(洞) 유래 및 변천
사간동의 동명은 1946년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로 고칠 때 사간원이 이곳에 있었다고 하여 유래된 것이다.
조선 태조5년(1396)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나눌 때 지금의 사간동은 북부 관광방(觀光坊)에 속한 지역이었다. 영조27년(1751) 9월에 만든 도성의 각 동계(洞契)를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3군문에 분속(分屬) 하여 유사시 동민들을 출동, 방어하게 하고자 만든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북부 관광방 중학내계 지역으로 되어 있다.
고종4년(1867)에 간행된 『육전조례』에도 영조 때와 같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한성부 5부를 5서(署)로 고치고 많은 동(洞), 계(契)를 신설함에 따라 북서 관광방 중학계 벽동(碧洞), 간동(諫洞) 일원이었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거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면서 경기도 관할로 격하되었고 이듬해 4월 경기도령 제3호로 개편된 경성부의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북부 관할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로 경성부 관내 186개의 동(洞), 정(町), 정목(丁目)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정할 때 북부 간동(課洞), 벽동 일대를 합하여 간동이라 하였다. 이해 9월 29일 출장소 제도가 실시되면서 북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이듬해 6월 1일 출장소 제도가 폐지되어 경성부 간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의 동명과 관할구역이 대폭 개편될 때 경성부 간정(諫町)으로 바뀌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區) 제도가 신설되면서 종로구역소 간정이 되었다.
광복 후인 1946년 10월 1일 서울시헌장과 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해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로 고칠 때 사간동(司諫洞)이 되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거 행정동제가 실시되면서 사간동, 중학동, 수송동, 송현동일원을 관할하는 수진동사무소가 설치되었다.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613호에 의거 사간동은 안국동, 화동, 송현동과 함께 신설된 안국동사무소의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10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981호에 의거 삼청동사무소에 통합되어 현재에 이른다.
(2) 동네 지명 유래
벽동은 다락골 혹은 벽장골이라고도 하는데 사간동 91, 97-2번지와 송현동의 구 미 대사관직원 숙소 서쪽 그리고 율곡로 북쪽 중학동 일대가 된다. 벽장처럼 동 사이에 길게 끼어서 이루어진 부락이므로 그렇게 불렀다.
사간동은 북으로 소격동, 동으로 송현동, 남으로 중학동이 있으며 서쪽으로 삼청동길을 경계로 경복궁과 마주하고 있다.
출처 : 『종로의 역사˙문화 유산』, 종로문화원(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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