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유래-도렴동
- 서울 종로구 도렴동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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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운영시간: 09:00 ~ 18:00공휴일 휴무
- 비용 무료
상세정보
(1) 동(洞) 유래 및 변천
도렴동의 동명은 1914년 동명 제정 시 도렴서라는 관아가 이 지역에 있었던 데서 유래된 것이다.
조선 태조5년(1396)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나눌 때 지금의 도렴동은 서부 적선방(積善坊)에 속한 지역이었다. 영조27년(1751) 9월에 만든 도성의 각 동계(洞契)를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3군문에 분속(分屬)하여 유사시 동민들을 출동, 방어하게 하고자 만든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서부 적선방 사온동계(司福洞契), 사역원계(司譯院契), 공조후동계(工曹後洞契) 지역이었다.
고종4년(1867)에 간행된 『육전조례』에는 서부 적선방 사역원계, 공조후동계 지역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한성부 5부를 5서(署)로 고치고 많은 동(洞), 계(契)를 신설함에 따라 서서(西署) 적선방 공조후동계의 공후동, 도렴동계의 의영동(義盆洞)·도렴동, 사온동계의 사온동 이었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거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면서 경기도 관할로 격하되었고 이듬해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개편된 경성부 서부 적선방으로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로 경성부 관내 186개의 동(洞), 정(町), 정목(丁目)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정할 때 중부(中部)로 바뀌었고 의영고동, 도렴동(都染洞), 사온동, 공후동 각 일부를 합쳐서 도렴동이라고 하였다. 같은 해 9월 29일 출장소 제도가 실시되면서 서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이듬해 6월 1일 출장소 제도가 폐지되어 경성부 도렴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의 동명과 관할구역이 대폭 개편될 때 경성부 도렴정(都染町)으로 바뀌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區) 제도가 신설되면서 종로구역소 도렴정이 되었다.
광복 후인 1946년 10월 1일 서울시현장과 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해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로 고칠 때 도렴동이 되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66조에 의거 행정동제가 실시되면서 도렴동은 당주동, 세종로(1번지 제외)일원과 함께 신설된 중앙동사무소 관할이 되었다.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거 세종로동사무소의 관할이 되었다가 1998년 12월 1일 종로구조례 제383호에 의거 사직동사무소 관할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2) 동네 지명 유래
도렴동은 도렴서가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마을 이름이고 공조후동, 공조뒷골 또는 공후동은 공조(工曺) 뒤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의영곳골 혹은 의영동(義盆洞)은 의영고가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렴동은 북으로 사직로8길을 경계로 하여 적선동과, 남으로는 당주동, 서쪽은 내수동, 동쪽은 세종대로로 둘러싸인 삼각형 모양의 지형이다.
출처 : 『종로의 역사˙문화 유산』, 종로문화원(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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