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유래-누하동
- 서울 종로구 누하동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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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운영시간: 09:00 ~ 18:00공휴일 휴무
- 비용 무료
상세정보
(1) 동(洞) 유래 및 변천
누하동은 1914넌 동명을 정할 때 누각동(樓閣洞) 아래쪽에 있다고 하여 누하동이라고 한 것이다.
조선 태조5년(1396)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나눌 때 지금의 누하동은 북부 순화방(順化坊)에 속한 지역이었다. 영조27년(1751) 9월에 만든 도성의 각 동계(洞契)를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3군문에 분속(分屬)하여 유사시 동민들을 출동, 방어하게 하고자 만든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북부 순화방 사재감계 지역이었다.
고종4년(1867)에 간행한 『육전조례』에는 한성부 북부 순화방 사재감상패계 지역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한성부 5부를 5서(署)로 고치고 많은 동(洞), 계(契)를 신설하였는데 지금의 누하동 지역은 북서 순화방 사재감상패계 누각동일부와 남척동(南隻洞), 유목동(柳木洞), 장성동(長城洞), 복정동(福井洞), 오거리(五巨里), 송목동(松木洞)이었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거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면서 경기도 관할로 격하되었고 이듬해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개편된 경성부 북부 순화방으로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로 경성부 관내 186개의 동(洞), 정(町), 정목(丁目)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정할 때 북부 누각동 아래쪽의 일부지역을 합쳐 누하동을 신설하였다. 이해 9월 29일 출장소 제도가 실시되면서 북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이듬해 6월 1일 출장소 제도가 폐지되어 경성부 누하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의 동명과 관할구역이 대폭 개편될 때 경성부 누하정(樓下町)으로 바뀌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출장소 대신 구(區)제도가 신설되면서 종로구역소 누하정이 되었다.
광복 후인 1946년 10월 1일 서울시헌장과 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해일본식 동명을 우리말로 고칠 때 누하동이 되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거 행정동제가 실시되면서 누상동과 누하동일원을 관할하는 누각동사무소가 신설되었다.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거 누상동과 누하동을 관할하는 누상누하동사무소가 설치되었다가 1975년 10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981호에 의거 옥인동 일부지역을 통합시켜 누상동사무소를 설치하였으며 1977년 9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1181호에 의거 효자동사무소 관할이 되었다.
(2) 동네 지명 유래
조선후기 이래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는 만큼 역사가 오래된 동이다. 이 가운데 누하동의 동명 유래가 되는 누각동의 누각은 연산군 때 지었던 정자가 아니고 광해군 때 건축한 인경궁(仁慶宮)으로 완전 준공이 되기 전에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됨에 따라 빈집으로 두게 되어 황폐화 되어갔다. 누각이 있는 누각골에 사는 사람들은 서리(胥吏)들이 많았다.
누상동, 누하동, 체부동에 걸쳐있는 누각동에 사는 사람들은 옛 부터 집집마다 담배쌈지와 갓을 만들었는데 용마루 위에 시렁을 얹고 쌈지와 갓을 널어 말렸으므로 "누각골 색시는 쌈지 접는 데로 다 간다"는 노래가 있었다.
남척동(南隻洞)은 누각골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납작하므로 납작골이라 불렀는데 한자로 남척동이라 표기하였고, 유목동은 버드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서 붙여졌으며 버드나무골 이라고도 하였다. 장성동은 담이 성처럼 길게 뻗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아마도 인경궁의 담이 아닌가 생각된다.
누하동은 동으로 통인동 · 체부동이, 남으로는 필운동, 서쪽은 누상동, 북쪽은 옥인동이 에워싸고 있으며 전형적인 집단 주택지역이다.
출처 : 『종로의 역사˙문화 유산』, 종로문화원(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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