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유래-내자동
- 서울 종로구 내자동 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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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운영시간: 09:00 ~ 18:00공휴일 휴무
- 비용 무료
상세정보
(1) 동(洞) 유래 및 변천
내자동의 동명은 1914년 동명 제정 시 호조에 소속된 내자시가 이 지역에 있었던 데서 유래 한다.
조선 태조5년(1396)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나눌 때 지금의 내자동은 서부 인달방(仁達坊)에 속한 지역이었다. 영조27년(1751) 9월에 만든 도성의 각 동계(洞契)를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3군문에 분속(分屬)하여 유사시 동민들을 출동, 방어하게 하고자 만든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서부 인달방 사직동계, 수성궁내계(壽城宮內契), 내수사계(內需司契) 지역이었다.
고종4년(1867)에 간행된 『육전조례 』에는 서부 인달방 사직동계, 수성궁내계, 내수사계, 수성궁월변계(壽城宮越邊契), 도렴동계 지역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한성부 5부를 5서(署)로 고치고 많은 동(洞), 계(契)를 신설함에 따라 서서(西署) 인달방 대창동계의 대창동, 내수사계 은행동, 종교(宗橋), 사직동계 사직동, 수성궁계 남정현(南征峴), 전립동(戰笠洞), 장흥고계(長興庫契) 은행동, 장흥동, 고윤동(古潤洞)이 지금의 내자동을 이루고 있었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거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면서 경기도 관할로 격하되었고 이듬해 4월 경기도령 제3호로 개편된 경성부 서부 인달방으로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로 경성부 관내 186개의 동(洞), 정(町), 정목(丁目)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정할 때 서부 전립동, 고윤동(古潤洞), 창엽동(昌染洞), 은행동, 남정동, 장흥고동, 종교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내자동이라고 하였다. 같은 해 9월 29일 출장소 제도가 실시되면서 북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이듬해 6월 1일 출장소 제도가 폐지되어 경성부 내자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의 동명과 관할구역이 대폭 개편될 때 경성부 내자정(內資町)으로 바뀌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區) 제도가 신설되면서 종로구역소 내자정이 되었다.
광복 후인 1946년 10월 1일 서울시헌장과 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해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로 고칠 때 내자동이 되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거 행정동제가 실시되면서 내자동과 내수동 일원을 관할하는 종교동사무소 관할이 되었다.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거 필운동, 체부동, 내자동을 관할하는 체부동사무소가 신설되면서 그 관할이 되었고 1975년 10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981호에 의거 사직동사무소에 합쳐져 현재에 이른다.
(2) 동네 지명 유래
내자동을 이룬 부락으로는 고간동·곡정동·남정동·전립동·사직동·은행동·장흥동·종교동·창렴동이 있었다. 고간동(古測洞)은 장흥교의 곳간이 있으므로 곳간골이라고도 하였다.
전립동은 벙거지를 만드는 집이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며 벙거짓골이라고도 하였다. 곡정동(曲井洞)은 금천교 쪽에 있는 마을로 굽은 우물이 있어서 붙여졌다.
사직동쪽의 마을은 사직골, 은행나무가 있던 부락을 은행나뭇골 혹은 은행동이라 불렀으며 내수동과 연결되는 곳에 있는 마을은 종침다릿골이라 하였다. 또 옛날 도렴동계(都染洞契)와 대창동계(大昌洞契)가 있던 부분의 부락은 창렴동이라 불렀다.
내자동은 북으로 체부동, 동쪽은 적선동과 접하고 있으며, 남쪽은 사직로8길을 경계로 내수동과 마주보고, 서쪽은 필운동과 이웃하고 있다.
출처 : 『종로의 역사˙문화 유산』, 종로문화원(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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