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록

동명유래-교북동

  • 서울 종로구 교북동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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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1) 동(洞) 유래 및 변천


 교복동의 동명은 1914년 동명 제정 시 교남동100번지 북쪽 지금의 종로경찰서 교남파출소 앞에 돌로 만든 다리가 있었는데 이 다리 북쪽에 있다고 하여 교북동이라 하였다.
 조선 태조5년(1396)한성부를 5부(部)52방(坊)으로 나눌 때 지금의 교북동 지역은 서부 반송방(盤松坊)에 속하였다. 영조27년(1751) 9월에 만든 도성의 각 동계(洞契)를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의 3군문에 분속(分屬)하여 유사시 동민들을 출동, 방어하게 하고자 만든『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서부(성외)반송방 지하계(池下契)였다.
 고종4년(1867)에 간행된『육전조례』에도 영조 때 그대로였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한성부 5부를 5서(署)로 고치고 많은 동(洞),계(契)를 신설함에 따라 서서(西署) 반송방 지하계는 세분화되어 모화현(慕華峴), 신촌동(新村洞), 관전동(館前洞), 석교동(石橋洞), 송정동(松亭洞), 평등(平洞), 관후등(館後洞), 옥폭동(玉漏同), 냉동(冷洞)지역이었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거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면서 경기도 관할로 격하되었고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의해 경성부의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서부 반송방 지하계 석교동, 장원정동, 관전동, 신촌동, 파발동 각 일부와 홍화동 지역이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에 의거 경성부의 186개 동(洞), 정(町), 정목(丁目)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정할 때 교북동으로 되었다. 같은 해 9월 29일 경성부조례 제8호로 서부 출장소의 관할에 속하게 되었고 이듬해 6월 1일에는 서부출장소의 폐지로 경성부 교북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의 동명과 관할구역이 대폭 개편될 때 경성부 교북정이 되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區)제도가 실시되면서 서대문구역소 교북정이 되었다.
 광복 후인 1946년 10월 1일 서울시헌장과 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해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꿀 때 교북동이 되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거 행정동제를 실시하면서 홍파동, 행촌동과 함께 서대문구 독립문동사무소 관할이 되었다. 그러다가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거 교북동사무소로 개칭하였다.
 1975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6호에 의거 종로구로 편입되면서 행촌동,홍파동 전역과 교북동 일부가 교남동사무소 관할이 되었고 교북동 일부는 서대문구 영천동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동네 지명 유래


 태종7년(1407) 8월에 창건한 모화관은 영천동 69번지에 있었으므로 모화관(慕華館)앞에 위치한 영천동과 교북동에 걸쳐있는 마을을 관(館)앞 골 혹은 관전동(館前洞)이라 하였다. 교남동과 접한 78번지 부근 일대에는 돌다리가 있었으므로 석교동 혹은 돌 다리골 • 석 다릿골이라 하였다.
 교북동 11번지 일대는 교북동 • 행촌동 • 홍파동에 걸쳐 있었는데 나중에 만들어진 마을이므 로 새말 혹은 신촌동(新村洞)이라 하였다.
 파발동은 서울∼의주간 통신수단의 하나인 파발이 지나는 곳으로 서울과 가장 가까운 연서역(延署驛)에 도착한 말과 연락인이 서울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쉬는 곳이 되므로 파발마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졌다. 파발골 이라고도 하였는데 모화관의 동쪽인 관동과 석교동 사이가 된다.
 홍화동(紅花洞)은 봄철이면 진달래와 살구,복숭아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살구가, 가을에는 감이 많이 열려 먼 곳에서 보면 마치 붉은 꽃이 온 동네에 가득한 것 같이 보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의 대신고등학교 맞은편 사직로 남쪽이 여기에 해당된다.
 장원정동(壯元亭洞)은 모화관 부근에 있던 정자로 모화관에 근무할 무사(武士)를 선출할 때는 이 정자 부근에서 무술을 시범하여 실력을 겨루며 특히 장원(壯元)한 사람에게는 정자에서 특별히 대접하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장원정의 일부는 영천동에 해당된다.
 오거리는 교북동,홍파동,행촌동으로 연결되어 있는 곳으로 다섯갈래의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교북동에는 영은문을 철거하고 세운 독립문이 서대문구와 종로구 사이에 걸쳐 있었는데 도로확장 공사로 인해 서대문구 독립공원내로 옮겨졌다.
 교북동은 북쪽으로 사직로를 경계로 하여 행촌동과, 서쪽으로는 통일로를 경계로 서대문구 영천동, 옥천동, 남쪽은 교남동, 동쪽으로 홍파동과 접하고 있다. 독립문4거리 근처 영천시장 건너편에 있는 교북동은 지역도 좁고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출처 : 『종로의 역사˙문화 유산』, 종로문화원(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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