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록

동명유래-교남동

  • 서울 종로구 교남동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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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1) 동(洞) 유래 및 변천


 교남동의 동명은 1914년 동명 제정 시 교남동100 번지 북쪽 지금의 종로경찰서 교남파출소 앞에 돌로 만든 다리가 있었는데 이 다리 남쪽에 있다고 하여 교남동이라고 하였다.
 조선 태조5년(1396)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나눌 때 지금의 교남동은 서부 반송방(盤松坊)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영조27년(1751) 9월에 만든 도성의 각 동계(洞契)를 훈련도감, 금위영 , 어영청의 3군문에 분속(分屬)하여 유사시 동민들을 출동, 방어하게 하고자 만든 『도성삼군문분계총록(都城三軍門分界總錄)』에 의하면 서부 (성외) 반송방의 지하계(池下契)였다.
 고종4년(1867)에 간행된 『육전조례(六典條例)』에도 영조 때 그대로였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한성부 5부를 5서(署)로 고치고 많은 동(洞), 계(契)를 신설함에 따라 서서(西署)반송방 지하계는 모화현(慕華峴), 신촌동(新村洞), 관전동(館前洞), 석교동(石橋洞), 송정동(松亭洞), 평동(平洞), 관후동(館後洞), 옥폭동(玉瀑洞), 냉동(冷洞) 등이 속하게 되었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거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면서 경기도의 관할로 격하되었고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서부 반송방 지하계의 평동, 냉동, 석교동, 천변동 등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에 의거 경성부 관내 186개 동(洞), 정(町), 정목(丁目)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정할 때 서부 반송방 지하계의 평동, 냉동, 석교동, 천변동 각 일부를 합하여 돌다리가 있던 남쪽이라 해서 교남동이라 하였다. 같은 해 9월 29일 경성부조례 제8호로 서부 출장소의 관할에 속하게 되었고 이듬해 6월 1일에는 서부출장소의 폐지로 경성부 교남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 및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의 동명과 관할구역이 대폭 개편될 때 경성부 교남정(橋南町)으로 개칭 되었다가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區) 제도가 신설되면서 서대문구역소 교남정이 되었다.
 1946년 10월 1일 서울시헌장과 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거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로 고칠 때 교남동이 되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66호에 의거 행정동제를 실시하면서 교남동, 평동, 송월동 일원을 합쳐 서대문구 감영(監營) 동사무소라 하였다.
 그러다가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거 교남동사무소로 개칭하였다. 1975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6호로 서대문구에서 종로구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2) 동네 지명 유래


 교남동의 동명 유래가 되고 있는 돌다리는 순조 때 발간된 『한경지략(漢京識略)』에는 석교(石橋)라고 되어 있고, 1864년 김정호(金正浩)가 만든 〈대동지지(大同地志)〉에는 초교(草橋), 고종 초에 김정호가 만든 〈수선전도(首善全圖)〉에는 교량 표시만 되어 있고 1902년 로얄 아시아틱 소사이어티에서 간행한 〈서울지도〉에는 석교라고 표시되어 있다.
 또 다리의 이름을 돌다리 , 석다리 라고도 불렀던 것으로 보아 〈수선전도〉 제작 당시에는 이미 석교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석교는 교북동 · 천연동 · 교남동에 걸쳐 있어서 지금의 의주로 한가운데에 위치한 셈이 되었다.
 석교가 있으므로 돌 다리골 혹은 석교동이라 하였는데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곳에는 언제나 시장이 형성되기 마련이듯이 석교동에도 무악재 너머에 사는 사람들이 가꾼 각종 농산물을 다리 근처에 펼쳐 놓아 난전(亂廛) 이 형성되곤 하였다.
 이 난전은 지금의 영천시장(靈泉市場) 끝과도 연결되어 서대문을 통해 도성 안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였으며, 1898년 서대문~청량리간 전차궤도가 부설되고 난 후 독립문 로터리 부근에 있던 전차종점과 가까운 이 일대는 자연스레 시장(市場)으로 발전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또 교남동과 평동 · 충정로1가에 걸쳐 있는 마을을 평동 혹은 거평동(居平洞)이라 하여 교남동의 중심이 되었다. 실제로 교남동의 서남쪽 끝에 해당되는 이 거평동의 지대 자체가 낮고 평평한 곳에 있었으므로 살기 편한 곳이라는 뜻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거평동과 바로 이웃한 마을을 찬 우물골 · 냉정동(冷井洞) 혹은 줄여서 냉동(冷洞)이라 하였는데 찬 우물이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물맛이 매우 차며 한여름에도 얼음조각이 떠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의주로가 한가운데에 있는 셈이 되었지만 의주로가 개설되기 전만 하더라도 찬 우물골에 있는 어떤 우물이라도 차갑고 달아서 한여름 나그네의 목을 총분히 적셔줄만 했다고 한다. 또 개천가에 있는 마을은 천변동(川邊洞) 혹은 개천께라 하였는데 교남동 · 송월동 · 홍파동에 걸쳐 있었다.
 교남동은 북쪽으로 사직동 · 세종로동, 동쪽으로 중구 정동, 서쪽은 통일로를 경계로 서대문구와 마주보고 있고 남쪽은 냉천동으로 둘러싸여있다. 현재 교남동 관내 대부분이 재개발 사업을 하고 있어 일부 지역에만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재개발 사업이 완료되는 2017년 2월경에는 많은 주민들이 새로 입주할 것이다. 이곳에는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흔적도 없고 근, 현대의 자랑거리도 찾아볼 수 없다.

출처 : 『종로의 역사˙문화 유산』, 종로문화원(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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