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유래-계동
- 서울 종로구 계동 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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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운영시간: 09:00 ~ 18:00공휴일 휴무
- 비용 무료
상세정보
(1) 동(洞) 유래 및 변천
계동은 원래 계동, 가회동, 원서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 이 지역에 제생원(濟生院)이 있어서 제생동이라 하다가 변하여 계생동(桂生洞)이 되었는데 1914년 동명제정시 계생동의 명칭이 기생동(妓生洞)과 비슷하다 하여 계동으로 줄인 것이다.
조선 태조5년(1396) 한성부를 5부(部)52방(坊)으로 나눌 때 지금의 계동은 한성부 북부 양덕방 지역이었다. 영조 27년(1751) 9월에 만든 도성의 각 동계(洞契)를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3군문에 분속(分屬)하여 유사시 동민들을 출동, 방어하게 하고자 만든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북부 양덕방계였다.
고종4년(1867)에 간행된『육전조례』에는 북부 계생동계라고 되어 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한성부 북서(北署)양덕방계 생동계 계동이 되었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로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면서 경기도의 관할구역으로 격하되었다. 1911년 4월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의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북부 양덕방은 중부에 속하였다.
1914년 4월1일 경기도고시 제7호에 의거 경성부의 186개 동(洞), 정(町), 정목(丁目)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정할 때 계동이라 칭하였다. 같은 해 9월 29일 경성부조례 제8호로 북부 출장소 관할에 속하게 되었고 이듬해 6월 1일 북부출장소 폐지로 경성부 계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동명과 관할 구역이 대폭 개편될 때 경성부 계동정이 되었고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區) 제도가 실시되면서 종로구역소 계동정이 되었다.
광복 후 1946년 서울시헌장과 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해 일제식동명을 우리식으로 바꿀 때 계동이 되었다.
1955년 4월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거 행정동제를 실시 할 때 계동사무소가 설치되었고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거 원서동이 계동사무소에 합쳐졌다.
1975년 10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981호에 의거 가회동사무소 관할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2) 동네 지명 유래
영조27년(1751)에 만든『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북부 양덕방(陽德坊) 관내의 계생동이 현 위치에 기입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영조 때 또는 그 이전부터 이곳이 계생동으로 불려 왔음을 알 수 있다. 계생동에는 제생원이 있으므로 제생동이라고 칭하였는데 후에 음이 변하여 계생동이 되었다. 또 계생동에는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의 옛집이 있었다. 지금 북부 계생동을 살펴보면 곧 옛날 제생원이 이곳에 있었던 고로 제생동이라 불려졌으며 제와 계의 음이 서로 혼용되는 까닭에 계동이라 칭한다 하였다.
계동은 동으로 원서동, 서쪽은 가회동과 재동이, 북으로는 삼청동과 서로 닿아있고 남으로 율곡로를 경계로 운니동과 마주보고 있다.
출처 : 『종로의 역사˙문화 유산』, 종로문화원(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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