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록

동명유래-견지동

  • 서울 종로구 견지동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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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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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1) 동(洞) 유래 및 변천


견지동의 동명은 1914년 동명 제정 때 견평방(堅平坊)에 있던 의금부에서 재판할 때 뜻을 굳게 가지고 일을 공평하게 처리한다는 의미에 따라 견지동이라고 붙여졌다.
조선 태조5년(1396)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나눌 때 지금의 견지동은 중부 견평방과 관인방(寬仁坊)에 속한 지역이었다. 영조27년(1751) 9월에 만든 도성의 각 동계(洞契)를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3군문에 분속(分屬)하여 유사시 동민들을 출동, 방어하게 하고자 만든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중부 견평방 금부내계(禁府內契), 후동계(後洞契), 전의감동계(典醫監洞契), 중어물전1패계(中魚物廛1牌契), 중어물전2패계, 관인방 대사동1패계(大寺洞1牌契), 대사동2패계, 대사동3패계, 대사동4패계, 충훈부내계(忠勳府內契) 지역에 해당되었다.
고종4년(1867)에 간행한 『육전조례』에는 중부 견평방 금부내계, 금부후동계, 전의감계, 중어물전1패계, 관인방 대사동1패계, 대사동2패계, 대사동3패계, 대사동4패계였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1895년 윤5월 칙령 제98호로 한성부 5부를 5서(署)로 고치고 많은 동(洞), 계(契)를 신설함에 따라 중서(中署) 견평방 전동계(典洞契) 전동·금부후동(禁府後洞)·동정동(銅井洞)·빙고동(氷庫洞)·하괴동(下槐洞), 전의감계(典醫監契) 전동·괴동(槐洞), 어물전계(魚物廛契) 이문동, 이문동계(里門洞契) 이문동, 금부계(禁府契) 금부후동·도화동과 중서(中署) 관인방 대사동계(大寺洞契) 대사동·하청석동(下靑石洞), 철물교계(鐵物橋契) 대사동, 탑동계(塔洞契) 대사동 지역이었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거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뀜과 동시에 경기도의 관할로 격하되었고 이듬해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개편된 경성부 중부 지역으로 되었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7호로 경성부 관내 186개의 동(洞), 정(町), 정목(丁目)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정할 때 중부 견평방의 전동, 금부후동의 각 일부와 빙고동, 도화동, 동정동과 관인방의 청석동, 대사동 각 일부를 병합하여 견지동(堅志洞)이라고 하였다.
같은 해 9월 29일 출장소 제도가 실시되면서 북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이듬해 6월 1일 출장소 제도가 폐지되어 경성부 견지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로 경성부의 동명과 관할구역이 대폭 개편될 때 경성부 견지정(堅志町)으로 바뀌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구(區) 제도가 신설되면서 종로구역소 견지정이 되었다.
광복 후인 1946년 10월 1일 서울시헌장과 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해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로 고칠 때 견지동이 되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거 행정동제가 실시되면서 견지동은 관훈동과 합쳐 전훈(典勳)동사무소 관할이 되었다.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거 낙원동사무소의 관할이 되었다가 1975년 10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981호에 의거 종로2가동사무소 관할이 되었다. 1977년 9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1181호에 의거 종로1-2가동사무소 관할이 되었고 1998년 12월 1일 종로구조례 제383호에 의거 종로1-4가동사무소 관할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2) 동네 지명 유래


전의감(典醫監) 영문 앞에 있던 우물은 구리 벽돌로 쌓아서 물을 뜰 때마다 쇳소리가 나므로 구리우물이라 하였고 이를 한자로 고친 것이 동정(銅井)이며 동정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동정동(銅井洞)·구리우물골이라 하였다.
금부후동은 지금의 공평동 94번지 일대에 의금부(義禁府)가 있었으므로 금부가 있는 뒷동네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금부뒷골이라고도 하였다. 도화동은 회화(繪畵)를 맡은 관청인 도화서가 있으므로 도화동, 도화섯골이라 하였다. 빙고동은 빙고(氷庫)가 있었던 곳으로 빙곳골이라고도 하였다. 전동(典洞)은 견지동 39번지에 전의감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동명이다. 전의감이라고도 불렀다.
견지동의 동쪽으로는 관훈동, 서쪽으로 수송동, 남으로 공평동, 북으로 송현동과 접해 있으며 우정국로가 동(洞)의 동서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출처 : 『종로의 역사˙문화 유산』, 종로문화원(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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